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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Pearl S. Buck) – 문학과 삶으로 사랑을 실천한 여인

칠갑산코뿔소 2025. 5. 18. 18: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Pearl S. Buck) – 문학과 삶으로 사랑을 실천한 여인

대지
대지

1. 한강과 펄 벅, 두 여성 작가의 공통점

대지(大地)처럼 넓은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 작가, 펄 벅. 그녀는 머리와 가슴, 펜을 넘어 직접 몸으로 이웃을 돌본 보기 드문 문인이었습니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더불어,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세계 문학계에 우뚝 선 또 한 명의 여성 작가가 바로 펄 벅입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한강이 겨우 세 살이던 해 세상을 떠난 그녀. 생년으로는 두 작가 사이에 78년의 차이가 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연도는 무려 86년의 간극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40여 년을 살았지만, 펄 벅은 중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이력 덕분에, 한강은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2. ‘백인 중국인’으로 살아간 펄 벅

펄 벅은 생후 3개월 무렵,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19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하며, 사실상 중국이 고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서양인인 그녀는 중국 문화와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동시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중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대학에서 잠시 수학한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1914년부터 1932년까지 18년 동안 선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며 봉사했습니다. 그녀가 마주한 중국은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중일전쟁, 내전 등으로 이어지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낸 펄 벅은 중국인들의 삶과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들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3. 『대지』와 중국 3부작

1931년 발표된 대표작 『대지(The Good Earth)』는 중국 북부의 한 가난한 농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 3대의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듬해에는 『아들들(Sons)』, 1935년에는 『분열된 집안(A House Divided)』이 출간되어 ‘중국 3부작’을 완성합니다. 서구화로 급변하던 중국 사회와 가치관의 변화, 몰락하는 전통 사회를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들로 그녀는 1932년 퓰리처상을,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4. 나와 『대지』의 인연

내가 처음으로 구입한 영어 소설은 바로 『대지』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과, 중국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 무척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영어 원서라는 자부심에 책장을 넘겼지만, 그땐 끝까지 읽지 못했죠. 훗날 펄 벅의 3부작을 모두 완독하면서야 비로소 중국 사회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5. 서구 개척의 그림자와 펄 벅의 신앙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근대화의 길을 걸은 서구는 항해술의 발전과 함께 세계로 진출했고, 초기 개척의 선봉에는 상인과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들과 군대가 손잡은 '3M 체제'는 식민지화를 낳고, 많은 제3세계 국가에 고통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펄 벅의 가족도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며 현지인들로부터 "외국 악마(foreign devil)"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믿는 신앙과 사랑으로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진정한 의미의 봉사를 실천했습니다.

6. 펄 벅과 한국의 인연

펄 벅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동양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쓰던 유일한(유한양행 창업자)과 교류하며,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에게 ‘김일한’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의 사회적 차별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1964년에는 한국에 펄 벅 재단을 설립해 이들의 입양과 복지를 지원했습니다. 혼혈아들을 돌보며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주는 그녀의 자애로운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7명의 혼혈아를 입양해 어머니가 되어주었으며, ‘박진주’라는 한국 이름까지 사용했습니다.

7. 문학과 실천, 그리고 참된 신앙인의 모습

펄 벅은 펜 끝으로만 사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선교사 가정에서 자라 중국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간 그녀는, 정체성의 혼란과 외로움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녀의 이타적 삶은 단지 문학적인 가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강이라는 또 다른 위대한 여성 작가를 떠올리게 한 펄 벅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8. 맺음말

『대지』를 처음 접했던 십 대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펄 벅은 단순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그 이상입니다. 그녀의 삶과 문학은 깊은 울림으로 남아, 혀끝의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펄 벅, 그녀야말로 진정한 문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