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공부 – 욕망의 시대에 자신을 지키는 배움의 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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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르게 변하는 세상, 흔들리는 나

요즘은 옛이야기만 해도 ‘꼰대’ 소리를 듣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은 농담처럼 소비되지만,
정작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전기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달려가고 있고
우리는 그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또 다른 유행과 기술이 등장하고
마치 ‘안 따라가면 도태되는 것’ 같은 압박 속에 살고 있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앞서가야 할까요?”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 욕망은 문명을 이끌지만, 때로 우리를 삼킨다

욕망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 역시,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넘치는 욕망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공자, 『논어』)

지나친 욕망은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앞서기를 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만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을 전당 잡히듯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모두 포기하는 삶은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닙니다.


3. 인문학은 욕망을 성찰하는 공부다

공자와 같은 성현들이 꾸준히 욕망을 절제하라고 가르친 이유는
그것이 삶을 망치는 덫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욕망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수준에서 다스리고 성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가장 먼저 배제되고, 가장 먼저 사라지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자본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은 자본을 다시 소비하도록 만듭니다.

이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욕망을 조율하는 지혜를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4. 옛 성현들의 가르침, 지금도 유효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논어』를 왜 읽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로 지금이기 때문에, 옛 성현들의 말씀이 더욱 필요하다.”

시대는 변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욕망에 흔들리고,
정의와 균형을 고민하고,
참된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방황합니다.

『논어』를 읽는 것은 그런 혼란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입니다.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인문학은 소외되고,
가난은 따라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을 펼쳐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 자체가 위대한 의지입니다.


5. 가난해도 공부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안연

이 글을 쓰며 늘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공자의 수제자 안연(顏淵)입니다.

  • 누추한 골목, 비어 있는 쌀독
  • 굶주림 속에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
  • 질문 없이 배우고, 곧장 삶에 적용했던 사람

공자는 그를 가리켜 “하늘이 나를 버렸다”(天喪予)고 두 번이나 통곡했을 만큼,
진리를 향한 열망과 겸손한 배움의 태도를 지닌 귀한 제자였습니다.

“호학(好學)” – 배움을 좋아하는 자,
공자는 『논어』에서 두 번이나 안연을 이렇게 부릅니다.

가난 속에서도 불꽃처럼 공부하고,
진리 앞에 자신을 낮추며 실천했던 그를 생각할 때마다
오늘의 내 공부와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6. 인문학은 희망입니다

지금 인문학은 위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절망적인 시대일수록 인문학이 희망입니다.

인문학은 우리의 욕망을 조절하게 하고,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세우게 하며,
참된 인간다움으로 사회를 이끄는 힘이 됩니다.

오늘도 저는 『논어』를 펼치며
공부가 삶이고, 공부가 곧 실천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가난 속에서도 배우고 실천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려 애쓴 안연처럼,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